구조진단노트

실측도면 작성이 왜 오래 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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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구조물의 점검 및 진단 과업을 수행할 때 해당 시설물의 준공도면이 없어서 실측도면을 작성하는 것이 과업지시서에 포함된 경우가 있다. PQ이상급의 과업에는 그리 흔하지 않겠으나, 일반 입찰로 나오는 지자체 과업 중에는 꽤 흔하게 있는 일이다. 이럴 경우는 현장에서 시설물의 치수를 하나하나 측정하여 도면을 작성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시간이다.

왜 실측도면을 작성하는 작업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에 대해 여러가지로 고민해본 적이 있다.

일반 교량을 설계할 때에는 예를 들어 PSC Beam교의 경우, ABeamDeck과 AAbutPier등의 프로그램으로 쉽게 도면(뿐만 아니라 계산서 수량까지)을 작성할 수 있다. 게다가 설계는 부재가 단면력을 버티지 못하면 부재를 키울 수도 있고 기초안정성이 OK되지 않으면 기초를 키우거나 말뚝을 적용해버리면 된다. 즉, 비교적 자유롭고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

하지만 실측도면은 현재 정해져 있는 구조물의 치수를 알아내야 하는 과업이므로 무엇을 자유롭게 바꿀 수가 없다. 땅에 묻힌 부분은 치수를 잴 도리가 없고, 형하고가 낮은 교대 교각의 경우 교량받침의 상세치수들을 측정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게다가 교량받침 시공시 도면대로 정확하게 시공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이를 도면화 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리고 현장에서 한 명이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측정하는 경우, "야리끼리"할당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빈틈없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떤 부재는 누구도 측정하지 않아 버리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고 어떤 부재는 두 명 이상이 중복해서 측정했는데 그 치수가 서로 달라 어느 치수를 써야 할 지 고민에 빠지는 사태도 일어난다.

 

현장에서 측정후, 사무실에서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도면을 작성할 때에 그제서야 뭔가 빠진 것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축이음 유간, 슬래브 유간, 거더 유간(상단, 하단) 등의 유간관련 치수들은 교대 옆쪽에 접근로가 마땅치 않으면 나중에 재야지 하면서 그냥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물론 미리 측정해야 할 것들을 쉬트로 만들어 다니면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잠시 밖으로 샜지만, 어쨋든 실측도면 작성은 여러 현장 데이터들을 측정한 자료를 참고해서, 추정가능한 '떨어지는 치수'로 정리하고 이를 검증해야 하며 일부 부재들은 합리적으로 추정까지 해나가야 하는데 그 근거까지 백데이터로 마련해야 하는 작업이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일반도 작성을 기준으로, 한길 프로그램들을 써서 도로교 설계하는 시간보다 약 5배~10배 정도 더 걸리는 것 같다.

 

점검 및 진단 업체들 중에 만약 상사나 대표가 "실측도면 작성이 무슨 설계하는 것 보다 더 오래 걸리냐"라는 멘트를 던진다면 그 회사에 그다지 오래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도 될 것이다. 

 

업무분장을 할 때에도, 실측도면을 맡은 인원에게 구조계산까지 맡겨버린다는지 하는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닌말로, 실측도면 작성은 거의 고문이다. 교량설계를 해 본 사람한테는 적어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다. 따라서 실측도면 작성만으로도 혼이 나갈 지경이고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리는데 그 인원에게 보고서나 구조계산 같은 중요한 임무를 하나 더 얹어줘버리면 그 인원은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다.

 

실측도면 작성시 유의해야 할 사항들은 경험적으로 봤을 때 다음과 같다.

 

- 교대, 교각 전경을 잊지말고 잘 촬영하고, 촬영한 교각이 P2의 전면인지 후면인지 알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 작은 보드판을 이용해 함께 촬영하는 것이 좋다. 보드판을 일일히 적는 것이 현장에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내업때 사진들이 헷갈리기 시작하면 난감해진다.

- 점검차를 쓰지 않지만 교각 코핑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는 일단 코핑의 폭이 교량 측면보다 밖으로 나갔는지 안나갔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보통 실측도면 작성시 교각의 코핑 폭은 슬래브 폭에 기준해서 다른 요소들을 반영하여 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대쪽 측면에서 최대한 슬래브와 교각 측면을 일직선 상으로 둔다고 생각하고 교각이 밖으로 얼마나 나오거나 들어갔는지 추정할 수 있도록 사진을 잘 찍어두는 것이 좋다. 

- 교량 시종점은 미리 파악해 두어야 한다. 시종점이 헷갈리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진다.

- 연석부 측면, 슬래브 바깥측면, 라멘교나 슬래브교의 경우 측면 슬래브 헌치와 지점부 변단면부 등등 측면에서 측정해야 할 것이 제법 많다. 

- 난간 높이, 난간 기초 등 난간의 상세 치수를 재 두어야 한다. 난간 하중을 계산하거나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 교량폭원과 연장은 가장 중요한 치수이지만 측정할 때 상당히 위험하다. 가능하면 레이저 측정장비로 안전하게 측정하는 것이 좋다. 50m 줄자 들고 뛰어다니다가 줄자가 지나가는 차량에 걸려버리기라도 하면....;;

- 교량 대장에 나와 있는 폭원이 실제 폭원과 다른 경우를 의외로 많이 봐 왔다. 측정된 치수가 안맞다고 상심하지 말고 제대로 측정했다면 그 치수를 믿자.

- 관매달기가 시공된 교량의 경우 그 관의 지름과 재질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 이전에 관매달기 전후의 교량 안전성을 검토해 본 결과 단면력(중앙부 모멘트)의 차이가 1%도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누가 지적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성 검토 및 내진성능평가시 포함시켜 주는 것이 명분이 서는 업무처리일 것이다.

- 교량받침은 옛날에 시공된 것이 아니라면 보통 그 측면에 제조회사가 어디인지, 어떤 제품인지 마킹이 새겨져 있다. 그것을 놓치지 말고 기록해야 한다. 탄성받침의 경우 고무치수, 상하플레이트 치수, 이동량(변형량) 등등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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